해보고 싶은 게 있어. 그 말은 타카히사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루나웨이는 자신의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모래사장에 맨발로 서 있었다. 바다와 해변의 경계에 서 있다 보니 쓸려오는 파도가 발목을 적셨다가 흩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몇번을 반복하다 보니 발가락 위를 모래가 덮고 있었다. 루나웨이는 발을 움직여 빼내는 대신 몸만 돌려 등 뒤에 서 있는 타카히사를 바라보고 물었다.
“뭘 하고 싶었는데?”
“사금 찾는 거.”
타카히사는 두 뼘 정도의 공간을 두고 무언가를 잡는 것같은 시늉을 하고 대중없이 흔들었다. 뭘 흉내 내는 건지 단숨에 알 수는 없었지만 곧 대충 눈치로 깨달았다. 발을 흔드는 시늉을 하는 것 같았다. 루나웨이가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자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타카히사는 입으로 “샤카샤카” 같은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로 맥없이 팔을 흔들자 소매를 움직일 때마다 물이 튀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물을 털다니, 무슨 강아지 같아.
“샤카샤카라니.”
“그래도 알아들었잖아.“
“왜 그런 게 하고 싶은 거야?”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금이 목적이 아니라?”
그러면 타카히사는 자기야말로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루나웨이에게도 익숙했기 때문에 그녀는 현실의 요소라고는 단 하나도 남지 않은 이 공간에서 문득 현실을 느끼고 말았다. 농담이라도 하는 말투였지만 마냥 터무니없지만은 않았다. 이런 바다에서 사금이 나올 리도 없겠지만, 사금이 나오더라도 그 가치나 알아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 그도, 그녀도 그 분야에는 그다지 조예가 없다. 정제되지 않은 금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버리고, 물에 젖어 반짝거리는 비닐 조각을 주워다 찾았다고 기뻐하는 모습이 어렵지도 않게 상상됐다. 하지만 목적이 재미라면 그걸로 됐지. 어차피 사금이든 비닐이든 사줄 사람도, 그걸 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없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기원했을지 모르는 바다와 오직 두 사람뿐이다.
루나웨이는 사실 사금 채취는 광산이 인접한 강에서나 나온다는 잔혹한 진실을 알려주는 대신 발을 움직여 모래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리고 타카히사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이리 와.”
타카히사는 순순히 다가갔다. 말 잘 듣는 강아지…. 루나웨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하지 못할 타카히사가 먼저 그녀를 껴안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기특함이 점점 심화되는 것을 느끼며 루나웨이는 기꺼이 그의 목을 감싸고 얼굴을 기댔다. 그에게선 소금기가 느껴지는 바다의 향기가 났다. 젖은 옷이 살에 닿자 한기가 느껴진다. 축축해서 좋은 감촉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젖어있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가슴 위로 턱을 올리고 고개를 들자,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눈과 마주쳤다. 서로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눈을 떴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파도에 떠밀려온 조난자처럼 바다에 잠겨있었다. 물을 먹은 옷의 무게로 몸이 무거웠다. 춥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물 위로 둥둥 뜬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루나웨이는 그 상태로 잠시 자신을 버려두었다. 감각과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주변은 느껴졌다. 물의 흐름과 파도 소리가 시작이었으나 곧 이질적인 기척이 다가왔다. 누워있는 머리 위로 무언가가 드리워졌다가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쯤 되니 슬슬 눈을 떠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그 기척이 먼저였다. 손이 그녀의 볼 위로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한쪽 볼을 감싸고 엄지로 한차례 볼을 쓸어내린 손은 곧 그녀의 귀를 만졌다. 그러곤 귀 뒤의 어딘가를 지그시 눌렀다. 아, 이건 맥박을 확인하는 거다.
내려온 손이 이번엔 어깨를 만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은 루나웨이의 복부를 짚었다. 그때 이건 확인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는 감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눈을 떴다. 타카히사는 그녀의 곁에 앉아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타카히사, 하고 루나웨이는 입 모양만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마치 실제로는 나오지 않은 그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타카히사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떨궜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손바닥을 보고,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건 꿈이야?” 하고 물었다. 루나웨이는 마치 자신을 감추는 게 타고난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는 얼굴을 무기로 쓰는 남자의 무표정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이건 꿈이야.” 하고 말해주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하고 말았는지 파악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염두해 두었던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 비록 최선보다는 최악에 가까운 쪽이었지만. 가장 깊은 단계의 꿈. 사람의 무의식에 가장 가까운 공간. 단 한 번도 침범받지 못한 미개척의 바다. 두고 온 현실이 무거워 속이 쓰렸다. 얼굴에 드러나고 말았는지 타카히사가 엄지손가락으로 루나웨이의 미간을 문질렀다.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웃고 있다. 모리 타카히사는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웃는다. 자신의 속을 지독히도 보여주기 싫어하는 사람다운 처세다. 불안하거나, 무력하거나, 드물게도 슬프거나 화가 날 때도 웃기 때문에 그의 진위를 파악하려고 주의를 기울였던 때가 있었다. 처음은 그가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의 감정이 궁금했다.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재미있게 보내보는 거지.”
“걱정은 안 돼?”
“응. 그건 네 담당.“
”그럼 타카히사의 담당은 뭔데.“
”네 걱정 인형.“
정말로 즐거워하다니.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을 김 빠지게 해버리는 반응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몸을 옭아매고 있던 팔을 풀더니 고개를 숙이더니 불시에 귀를 깨물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잘근잘근. 숨이 목덜미에 닿아 간지러웠다. 루나웨이는 생리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밀어냈다.
“간지러워.”
“참아. 걱정을 먹어주는 중이니까.”
그렇다고 그가 순순히 밀려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루나웨이는 몇 분간 입질에 가까운 쏟아지는 키스에 시달려야 했다. 타카히사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네 걱정은 짜네. 여운 같은 웃음을 흘리며 루나웨이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빠졌으니까. 루나웨이는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눈을 감는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