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나고, 제다이는 패배했다. 우주의 가장자리까지 제국의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다.
단테 키르마는 폐허가 된 사원을 뒤로 한 채 코러산트를 떠났다. 점검한 지 오래된 우주선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이륙했다. 기계가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면 창밖은 우주, 삽시간에 창밖이 새까매졌다. 남자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조종간을 조작했다. 목적지는 행성 에키드나. 레비의 유언이 가리키는 곳이었다.
…….
창문 아래로 이제는 돌아가지 못할 행성이 보였다. 무너진 건물들 아래에는 제다이가 오랫동안 중요시 여겨온 것들이 묻혀 있을 테다. 입 안이 썼다. 남자가 구해낸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념을 위해 가족까지 베었지만, 그 신념까지도 패배했으니 그야말로 참담한 몰락이었다.
단테 키르마는 죽은 사람의 유품을 쥐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렸다.
“단테 씨와 떨어져 있는 동안 아이가 생겼고, 낳았어.”
“남자아이야. 나를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해.”
“그 애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마. 단테 씨가 나를 죽였다는 이야기 같은 거.”
“그냥... 그 애의 완벽한 아버지가 되어줘.”
“단테 씨는 내 완벽한 가족이었으니까.”
유품인 레코드 디스크에는 행성 넘버와 함께 주소지와 홀로그램 영상이 담겨 있었다. 주소지는 아마 아이가 머무는 곳의 주소일 테다. 단테 키르마는 숫자와 글자의 조합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홀로그램 영상을 재생했다. 레코드 디스크 위로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단테 씨.”
레비였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레비가 레코드판 위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단테 키르마는 불에 데인 것마냥 화들짝 놀라며 영상을 종료했다. 그리곤 한참동안이나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왜 이딴 걸 유품이랍시고 남긴 거야…….’ 단테 키르마가 짜증내는 동안 이제는 빛을 잃은, 수많은 별들이 직선 모양으로 남자의 우주선을 스쳐 지나갔다. 그 궤적을 바라보며, 단테 키르마는, 그저 지난 날을 후회할 뿐이었다. 그는 에키드나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내내 그랬다...
남자를 상념에서 건져올린 건 우주선의 착륙 안내음이었다. 지상에 도달한 그는 우주선을 위장 모드로 전환한 후 땅에 발을 내딛었다. 아주 오랜만에 방문했음에도 에키드나는 30년 전과 엇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감상이 짧았다.
‘도착했군.’
물론 전쟁의 여파는 명백했다. 길목 곳곳에 제국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사진처럼 한결같은 도시였다. 매연이 섞인 바람이 남자의 후드를 단숨에 젖혔다. 습하고 우울한 공기가 살갗을 타고 온몸으로 기어올랐다. 그늘 같았던 천이 벗겨지니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빛이 고장난 시야 위를 덮쳤다. 세상의 모든 색을 뭉쳐 놓은 듯한 조명과,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어지럽게 연결된 전선들. 커다란 간판은 서로 더 눈에 띄려는 듯 다닥다닥 붙은 채 요란하게 반짝였고, 그 간판을 붙든 빌딩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서 있었다. 혼잡함이 정교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스팔트 위로는 시끄러운 소음이 깔렸다. 마치 도시의 거주민들을 채찍질하는 것처럼 경적 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울렸다. 발전했으면서도 낙후된 도시. 눈부시면서 동시에 음울한 곳.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은 언제나 높은 곳의 빛만을 바라보지만, 그 빛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는 동네. 그곳이 바로 행성 에키드나였다.
단테 키르마는 다시 레코드 디스크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디스크에 설치된 작은 프로젝터에서 홀로그램 레비가 튀어나와 익숙하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어때, 단테 씨?”
“여전하다 싶군.”
“그치? 여긴 한결같더라고. 나 지내던 때랑 달라진 게 없어.”
“그래…….”
단테 키르마는 그저 영상일 뿐인 홀로그램에게도 성실히 대꾸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빛나는 도시 아래로 그림자처럼 혼탁한 동네가 하나 있었다. 에키드나에서도 슬럼으로 분류되는 13구역으로, 레비가 나고 자란 곳이었다. 남자는 외워두었던 주소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디스크에 남겨진 주소 역시 13구역이었기 때문이다. 단테 키르마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제다이 사원을 박차고 나간 레비가,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고, 시스로 변절하기까지의 여정을 되짚고 싶었다. 쉽진 않았다. 추론에 공백이 많아서였다. 원인은 명확했다. 레비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날들이 많았았기 때문이다.
‘걷다 보면 짐작할 수 있을까.’
단테 키르마는 능숙하게 제국군의 검문을 회피하며 고민했다. 군인들이 사라지자 레코드 디스크에서 다시 홀로그램의 레비가 튀어나와 입을 열었다.
“단테 씨~ 저기 보고 가자.”
“어디를.”
“저쪽. 경기장!”
“…….”
남자는 반사적으로 레비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포드 레이싱 경기장이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경기장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시설이 너무 낙후되어 있어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었는지조차 의심갈 정도였다. 게다가 트랙에서는 포드 레이싱은 커녕, 격투기가 진행중이었다. 관중들은 돈을 걸어대며 도박을 전락해버린 스포츠를 즐겼다.
“저기서 단테 씨가 나 주워갔잖아. 몰래 포드 레이싱 구경하고 있다가 직원한테 걸렸는데, 단테 씨가 아는 척 해줘서 안 잡혀간 거. 기억 나?”
“그랬지.”
“단테 씨를 따라가면 저것보다 더 빠른 포드를 타게 해 준다고도 했었고.”
“…그랬던가.”
“기억 안 나는 척 하는 거지?”
“정말로 기억이 안 나.”
“그때부터 난 단테 씨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지.”
“…….”
그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길 택했다. 트랙과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자극은 더욱 강렬해졌다. 선수들의 둔탁한 타격음이나 뜨거운 조명의 열기 같은 것. 장사꾼들의 바람잡기와 이에 응하는 관중들의 환호성까지.
단테 키르마는 입구에서 티켓을 구매한 후 관중석 구석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런 와중에도 레비의 홀로그램은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좀 솔직해져 봐! 어차피 미래의 나는 단테 씨가 뭐라 말하든 못 들을 텐데.”
“…….”
“단테 씨는 늘 그렇다니까.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
“그래~ 경기나 봐."
“…….”
“그때 단테 씨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나도 저기서 운전 하고 있었겠지?”
“…….”
"잘 했을 텐데."
“…….”
영상 속 레비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공교롭게도 단테 키르마가 디스크를 바닥에 대충 내려뒀기 때문에, 레비의 손끝은 경기장이 아닌 관객석 뒤편을 향하게 되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레비가 트랙을 가리키게끔 디스크의 방향을 돌렸다. 경기장에선 여전히 격투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홀로그램을 녹화할 때의 레비는, 단테 키르마가 에키드나에 도착한 날에 포드 레이싱이 열릴지 아닐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 어긋남이 단테 키르마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자신의 반응은 꿰뚫고 있으면서, 그 외의 것과는 일절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레비는 죽었고, 이건 홀로그램일 뿐이라고 재차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는 레비에게도 경기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멍하니 허공만 응시했다. 레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누가 이길 것 같아?”
“……전혀 모르겠군.”
“음... 난 2번.”
“왜 너는 이런 꼴이고,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에. 그것보단 2번이 더 잘 할 것 같은데?”
“죽은 사람의 영상이나 띄워놓고 격투기나 보고 있는 건 또 뭐 하자는 짓인지.”
"내기 할까?"
"……."
참다 못한 단테 키르마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우연히도 홀로그램 역시 조용해졌다. 링 위는 승패가 판가름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흰 옷을 입은 선수가 상대방을 때려눕힌 후, 심판의 콜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3, 2, 1. 심판은 곧 승리를 선언했다. 장내는 함성과 탄식으로 가득찼다. 개중에는 분노해 바람잡이들의 멱살을 잡는 관객도 있었다. 단테 키르마는 문득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늘 억누르고 살아왔는데, 이깟 내기 따위에 아낌없이 기뻐하거나 화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기분은 괜한 자격지심임을. 허튼 감정이다. 단테 키르마는 마음을 날카롭게 잘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모두가 무대 위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중이었다. 그가 경기장을 이탈한다고 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볼 일은 없단 얘기다. 기껏해야 돈을 건 선수가 져서 열 받은 관중 취급이나 받을 테지. 그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경기장에 입장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우스운 짓이야. 이건.’
죽은 사람이 남긴 영상 따위에 마음이 들끓는 건 정말 꼴사나납다고 단테 키르마는 생각했다. 사람들을 제치고 경기장 밖을 빠져나오면서도 고찰은 멈추지 않았다. 왜 레비는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 건지. 자신은 왜 그걸 들어주고 있는 건지. 그애를 어째서 죽였고, 그애는 또 어째서 변절했는지. 원인을 찾아 하나하나 따지려 하면 너무 많은 것들을 짚어내야만 했다. 그렇게 과거를 발골해낼 때마다 남자의 마음은 금 간 거울처럼 위태로워졌다. 엉망진창이다. 그는 무너지는 심정을 겨우 부여잡으며 레비가 남긴 주소지로 향했다.
행성 에키드나, 13구역, 뮐러 스트리트, 324번지.
빨리 아기나 받아와서 얼른 이 도시를 떠나야겠어. 남자는 굳게 다짐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단테 키르마가 도착한 곳은 이름 없는 어느 술집이었다. 적당히 <주점>으로 통하는 그 가게는, 약 25년 전, 레비의 엄마가 주방에서 일하며 신세를 지던 곳이었다. 도시 아래쪽 사람들은 절대 위로 올라가지 못할 만큼 공통적으로 가난했지만 그 가난에도 급이 있었다. 개중 가게 주인 내외는 사정이 아주 나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였을까. 주인 내외는 레비 모녀에게 퍽 너그러웠다. 그래서 레비는 자신의 유산을 <주점>에 남겨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빠르게 걷다 보면 어느덧 주점의 문 앞이었다. <영업 중>이라고 적힌 팻말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단테 키르마는 공용어 팻말의 문자를 읽다가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보단 이 분들이 네 애를 더 잘 키울 거다. 아마 그럴 걸.”
홀로그램은 예상했다는 듯 대꾸했다.
“뭐, 단테 씨는 내 완벽한 가족이었지만. 내 아들에게도 완벽한 가족이 되리란 보장은 없지.”
“그래.”
“그렇지만 들어주기로 했잖아. 이제와서 무를 건 아니지?”
“…….”
단테 키르마가 답하거나 말거나, 레비는 장난기 어린 투로 그에게 핀잔했다. 단테 키르마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고민했다. 그는 불안했다. 레비의 변절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레비의 아이까지도 망쳐버릴까봐. 그래서 또 다시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리게 될까봐 무서웠다. 단테 키르마는 과거 자신의 결단이 잘못됐다곤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책임지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괴로워했다. 그건 옳고 그름과 관련 없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단테 키르마는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고통을 두 번이나 겪을 자신이 없었다. 그럴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
그가 고뇌하고 있는 와중 가게의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두 명의 노인이 나오며 말했다.
“단테 키르마 씨죠. 레비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그 중 한 사람의 품에는 담요로 말린 아이가 안겨 있었다. 단테 키르마는 새삼스럽게 실망하고 체념했다. 운명이란 이렇다. 거부하고, 외면하고, 끝없이 미루고 싶어도, 끈질겨서, 닥쳐야 할 운명은 결국 정해진 사람에게 닥치게 되고야 만다.
“……그래.”
인간은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 * *
단테 키르마는 거대한 빵덩이를 드는 것마냥 아이를 넘겨받은 후 가게를 떠났다. 검정 체모에 맑은 초록색 눈. 레비와 꼭 닮은 갓난아이가 가진 건 배냇이름 뿐이라고 주인 내외는 일러주었다. 남자는 혹시라도 레비가 남긴 이름이 있을까 싶어 디스크의 홀로그램 영상을 재생했다. 마치 기다렸단 것처럼 레비가 떠들었다.
“이름은 단테 씨가 지어줘.”
“하아…….”
“이렇게 말할 줄 알았잖아?”
“알았긴 했다만.”
“아무리 해도 ‘킹’이라는 이름밖에 안 떠오르고 그러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이름이긴 한데…….”
“그거 봐. 역시 단테 씨가 짓는 게 낫지?”
“…….”
“그래서. 뭐로 할 건데?”
두 사람의 대화가 어긋날 때마다 단테 키르마는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선명한 목소리도 결국 죽은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피하듯 도시의 뒷골목을 헤쳐나갔다. 그러는 와중 혹여라도 오염된 스모그가 맨살에 닿을까봐 아기는 품에 완벽히 가둔 채였다. 제국 병사들의 눈을 피해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우주선을 숨겨둔 바위산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덧 해질녘이었다. 원체 어두운 도시여서 하늘에 행성이 사라지는 풍경을 봐야만 황혼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는 우주선의 은신을 풀며 잠시 숨을 골랐다. 제법 흔들렸을 텐데도 아기는 울지도 않고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평온하군. 남자는 속으로만 빈정대며 생각했다.
‘레비는 언제나 이름을 의식했었지.’
단테 키르마의 기억 속 레비는 언제나 그 스스로가 이름의 기원처럼 충돌해 사라질까 불안해했다. 어쩌면 그 근본적인 불안이 레비를 다크 사이드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이름에는 힘이 있는 걸까. 남자는 그런 미신을 믿지는 않았다. 단테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만약……. 이름대로 이 애의 운명이 정해진다면. 단테 키르마가 바라는 건 하나 뿐이었다.
“핼리.”
네가 돌아오면 좋겠어. 넌 혜성이니까. 그는 다시 말했다.
“핼리 키르마야.”
“뭐야. 단테 씨 답지 않게 좋은 이름이잖아?”
“……신중하게 골랐으니까.”
“자주 불러줘.”
“그래.”
남자는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불렀다. “핼리.”
헬리 키르마는 호명 때문에 잠에서 깬 듯 얼굴을 찌푸리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레비가 말했다.
“그 애도 좋아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군.”
단테 키르마는 모포로 아이의 몸을 다시 꽉 둘러매며 우주선에 올랐다. 아이가 이륙음에 놀라지 않도록 대비하는 짓이었다. 창문 너머로 노을이 번졌다. 석양은 도시의 조명을 흡수해 건물의 경계면을 초록색으로 불태웠다. 오직 에키드나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레비가 말했다.
“아~. 이제 이제 슬슬 녹화도 정리해야겠어.”
“…….”
“배터리가 없거든.”
“그런 건가...”
남자는 흐린 눈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마치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홀로그램 속 레비는 그 모습을 빤히 관찰하듯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단테 키르마가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널 가족처럼 사랑했으니까.”
“단테 씨는 내 부탁이면 뭐든 들어주지만.” 대답이 늦어 레비의 목소리와 남자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겹쳤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
“고개는 왜 돌려. 설마 단테 씨, 우는 거야?”
“…….” 남자는 여전히 석고상처럼 멈춘 상태로 시선을 허공에 고정했다.
“……에이. 안 우네. 역시 그럴 리가 없지.”
“…….” 그의 눈밑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뭐. 한 번쯤은 단테 씨가 우는 걸 보고 싶긴 했지만.”
“…….” 눈물이 곧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단테 씨가 울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어.”
“…….” 울음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단테 씨에게 의지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 목에 물이 차오른 것처럼 가슴이 갑갑했다.
“그만큼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도 했거든. 나도 슬프니까.”
“그럴까봐…….” 티내지 않았던 거야. 문장은 완성되지 못한다. 상관은 없다. 어차피 들어줄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만약에, 단테 씨가 내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 숨죽인 채 흐느끼는 소리가 고요한 우주선 안에 울려퍼졌다. 오직 핼리 키르마만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일 뿐이다.
“그땐 웃을게.”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지금부턴 지겹도록 지난한 밤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어둠 끝에는 여명이 찾아온다. 먼저 낮이 밝아오면, 어둠이 그 뒤를 따르고, 어둠 후에는, 빛이 등장하는 게 포스의 이치니까.¹ 당연히 단테 키르마도 그 사실을 알았다. 또 그럴 것이라고 강하게 믿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절망했다. 어제의 빛과 오늘의 빛은 분명히 같지 않다. 한 번 저문 것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단 의미다. 언젠간 제국의 어둠이 물러나고, 우주에는 다시 ‘포스가 함께하길’ 바란다는 인사를 주고받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이 와도 과거처럼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다. 품 속의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나아지는 순간 역시 올 테지만, 그게 레비로 인한 상처를 상쇄한단 이야기는 아니다. 유산은 분명 떠난 사람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남긴 사람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남은 사람은 다만 그걸 매개로 떠난 사람을 기억할 뿐.
곧 디스크의 전원이 꺼졌다. 미세한 전자음마저도 사라진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렇게 침묵에 잡아먹히는듯 하면 곧 핼리 키르마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고요함을 깨운다. 그럼 단테 키르마는 정신을 차리고, 하릴없이 우주선을 작동시킨다. 관성에 가까운 몸짓. 신념으로 굳어진 마음. 그런 것들이 모여 규칙을 이루고, 순리로 여겨져, 이치가 된다. 우주는 그렇게 돌아간다.
¹소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