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가 끝나면 생명 유지 장치를 끌게요.
… …
그럼 못 돌아와요.
살릴 겁니다.
시계의 타이머를 켰다. 8분이다.
그는 아날로그 시계 밑판에 삽입한 작은 메모지에 일곱 번 바늘로 구멍을 냈다. 이걸로 일곱 번째 시도였다.
첫 시도에서는 키르쉬 페트라르카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나는 티모어 로우더. 오러다. 과거를 쫓는 자들Past Chaser의 잔당을 쫓고 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상대는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열차에서 티모어도 오러도 아니었고 카메론 혹은 맥더모트로 불렸다. 대단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물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들 사이의 어떤 유대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눈앞의 여성은 자신을 미워하고 거슬려 하면서도 이상행동을 신경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는 무정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그가 빌린 몸에 대해 정보를 습득했다. 카메론 맥더모트. 그리고 열차에서 눈을 뜰때마다 보게 되는 인물의 이름은 키르쉬 페트라르카. 그녀는 옅은 은회색 눈으로 자신을 꿰뚫듯 바라보는데,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면 단 5분 만에 둥글게 우회해 털어놓지 않은 정보와 비밀마저 들통날 것 같았다. 그래서 세 번째 시도에서는 키르쉬에게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 범인의 단서를 쫓았다. 그리고 네 번째에서는 키르쉬가 카메론의 상태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다섯 번째에서 그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조력자로 키르쉬를 끌여들여야 한다고 결딴냈다. 그리고 여섯 번째에서 그들의 계획을 전해 들었다. 호그와트의 졸업생들은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이 열차는 8분 뒤에 폭발한다.
일곱 번째 시도. 그들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 마주보고 대화하고 있었다.
"지금 너랑 마주보며 가고 있는 건 내 마지막 관용이고 아량이지. 고마워 하렴."
"하하...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할게. 내 일은 아직 하나 남았거든."
"일?"
그는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무릎 쪽으로 상체를 끌어당겼다. 첫 번째 시도에서 그는 이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세 번쨰 시도에서는 대화를 일축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일곱 번째 시도에서 붉은 머리의 카메론은 앞머리를 정리하는 손, 날카로운 눈초리, 은회색 눈동자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확신하고 있었다. 키르쉬는 그가 도망쳐야 할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대화를 하고 안심시켜야 할 사람이었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움직일 거다."
"여행 얘기라면 이미 끝났을 텐데."
"하하... 아직 우리가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남은 것 같아서 말이야. 핸드폰은 확인하지 마. 본대도 네가 길길이 날뛸 일밖에는 없을 테니."
"... ...너."
"응?"
마치 무언가를 추궁하는 얼굴로 서 있던 키르쉬의 얼굴에서 표정이 차츰 사라졌다. 이제는 형형한 눈빛만이 남았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그녀의 권리라는 듯 당연하게... 그 당당한 기색에 티모어는 카메론의 모습을 빌려 웃었다. 까닭 없이 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뜬금 없는 웃음소리에 키르쉬의 침묵은 기다란 실처럼 끊기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멋대로 해석하겠군."
그는 시계를 내려다봤다. 남은 시간은 6분 30초. 열차의 복도로 한 남자가 걸어간다. 남자가 지갑을 흘리자 뒤따르던 승객이 지갑을 주워들어 그를 쫓는다. 이 열차는 곧 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3분. 아니군… 4분만 기다려줘. 그보다 늦게 온다면 난 실패한거야."
"늦지 않게 와.” 키르쉬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실패할 남자라면 가버려."
의자 등받이를 붙잡은 성공할 남자는 키르쉬의 손바닥 위에 개구리 초콜릿을 올려놓았다. 껍데기를 까기 전까지 그 초콜릿은 키르쉬의 손바닥 위에서는 튀어오르지 않을 거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이들의 여정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앞날이 불에 탄 풍경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키르쉬는 조용한 공간을 좋아했다. 어딘가로 떠난다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 좋겠어. 바람 소리나 파도 소리만 들리는 곳이 마음 편하단다. 흘리듯 동행인을 여지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도 있었다. 따라온다면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날 거야. 스페인, 오렌지 나무, 네가 과일을 훔치다 걸리는 모습을 보는 건 썩 유쾌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들은 이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그들은 티모어의 상상 속에서 사람이 드문 섬을 지나쳐 스페인에 갔다가, 런던의 저택에서 베이킹을 하기도 했다. 열차가 폭발하지 않는, 체포된 범인이 배후를 실토하는 세계선이라면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기차칸 드레스룸에서 설치된 마법 폭탄을 해체해 배수관에 부품을 빠뜨려 넣고, 지갑 주인을 뒤쫓아 마법으로 기절시킨 뒤 추적 마법을 걸고 속박해 창고 칸에 넣기까지 3분이 걸렸다. 그리고 남은 1분을 이 소년에게 할애했다. 카메론 맥더모트. 불타는 적발의 소년, 불운한 평행 세계의 아이에게. 인생에 고작 몇 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1분은 몸을 빌린 이를 위해 애도를. 남은 1분은…
“키르쉬. 뭘 할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흘러갔다.
“인생에 1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뭘 하겠어?”
키르쉬의 손바닥 위에서 녹아가고 있는 개구리 초콜릿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걸 보면 스스로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네가 더 무서우니까 관둬주겠니.”
“5초만 바깥 봐봐. 하늘이 예뻐.”
“... …”
타이머는 1분을 지나며 59초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영영 떠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 달리는 기차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별안간 마주친 시선이 주박처럼 두 사람을 옭아 맸다. 유리를 투과한 빛이 섬광처럼 두 사람을 연결했다.
“나라면… 눈 앞의 상대와 대화하겠어.”
실패할 남자라면 가버렸겠지만. 짧은 농담을 덧붙이자 키르쉬가 심드렁하게 픽 웃었다. 그는 키르쉬의 웃음에 화답하기 앞서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그게 꼭 필요한 것처럼 무릎을 툭 부딪치고는 말했다.
“네 얘기를 해줄래? 이제 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 좀 통하는구나.”
키르쉬는 카메론이 용건 없이 이름만 부를 때처럼, 혹은 군것질거리를 건넬 때처럼 그 다음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손끝으로 입술을 두드렸다. 그 순간은 두 사람 사이를 지나치는 섬광처럼 일순간 빛났다가… 키르쉬가 입술을 떼고, 카메론의 몸을 빌린 오러가 비밀을 실토할 때까지 아주 오래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