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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The Ma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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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 136분

SF · 액션 · 스릴러

언제나와 같은 탐정 사무소 레몬 스카치. 명탐정이라고 불리는 파릴렌 틴블룸은 자신의 조수 발터 로드만을 은밀히 불러내 세계의 진실을 고한다. 그들은 진정한 현실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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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로드만은 ‘파릴렌 틴블룸’ 이 엉뚱한 탐정을 따르는 것이라면 이골이 났으나 이번은 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레몬스카치 탐정사무소의 아침은 느즈막이 일어났을 그를 깨우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익숙한 침대 위에 탐정 대신 놓여있는 건 반절쯤 찢어진 종이. 적힌 것은 낯선 주소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 당연한 조수이기에 의아함이 먼저 치밀었다. 대신 주소 다음은 퍽 탐정 같은 메모였다.

 

‘미행당하지 않을 것. 핸드폰은 두고 와!’

 

의뢰 때문일까? 보통은 발터에게서 전해지는 것이 먼저만 없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의아함은 곧 익숙한 사람에 대한 신뢰로 바뀐다. 장난이 치고 싶은 모양이지. 달력과 스케줄러를 확인하면 의뢰도 없고 특별한 날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울려줄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기에 길을 나선다. 

동거인의 부탁대로 발걸음을 조심해 으슥한 골목을 한참 돌아 도착한 주소에는 안전가옥처럼 숨겨진 낡은 저택이 보였다. 탐정 사무소라면 익숙하게 지니고 있는 열쇠로 열 테지만 이번에는 손님답게 노크를 하고 기다린다. 어디까지 장단에 맞춰줄지 재는 것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파릴렌, 이번에는 무슨 일입니까?”

“어서 와 발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어.”

“그런 거라면 사무소에서 해도 충분했을 텐데요.”

“검증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비밀리에 진행하게 됐네.”

“제시간에 오다니 역시 명탐정의 조수야.”

“훗.” 

 

검증과 비밀. 탐정을 직업으로 가지는 이들에게는 낯선 단어가 아닐 텐데도 파릴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어색하다. 그를 아는 이라면 감과 솔직함이 자랑이자 단점으로 가진 것을 모를 리 없으니까. 어둑한 복도를 따라 들어가고 있으면 말이 이어진다. 

 

“발터,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또 무슨 가정입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니라면 어떻겠어?”

“어제 영화를 봤군요?”

 

그게 아니란 말이야. 파릴렌은 드물게 단호하게 말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낯선 건물이지만 꾸며진 방은 떠나온 사무소와 닮은 꼴이었다. 탐정이 조수에게 의뢰인에게 하는 것처럼 자리를 권했고, 그가 앉기도 전에 이어지는 말은 탐정이 파릴렌인 것을 감안해도 터무니없는 편이었다.

 

“사실 이 세상은 가짜야. 물질은 물론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까지 전부. 허상 위에 현실을 입혀뒀거든.” 

 

파릴렌은 권해둔 자리 반대편 의자를 잡더니 다리 하나로 세운다. 어느 한 쪽으로 쓰러질 법한데 균형을 잡은 듯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다. 

 

“여기 의자는 없는 거야.”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신 거죠?”

 

대답 대신 파릴렌은 의자는 그대로 내버려 두더니 베이커리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린다. 발터도 아는 가게 이름이다. 다른 디저트도 맛있지만 여기는 타르트가 맛있다고 했던가.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더라도, 디저트는 하루에 정해진 분량이 있습니다.”

 

익숙한 잔소리를 뒤로하고 꺼내진 것은  파릴렌이 좋아하는 마카롱도 케이크도 에클레어도 그리고 잘한다고 했던 타르트도 아니었다. 쓸데없이 없이 큰 상자에 작은 사탕이 두 개. 선명한 붉은 색과 파란 색. 

 

“붉은색을 먹으면 ‘진실’을 보여줄게.” 

“파란색을 먹으면요?”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나도 그렇게 대해야겠지.”

 

여전히 파릴렌은 웃고 있었으나 긴장을 숨기지 못했다. 이건 어떤 사건 의뢰도 아니고 둘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떤 진실에 도달할 것을 바라고 있는 탐정의 표정이다. 그러니까 이 긴장은 거절에 대한 걱정보다는 틀림없는 수락에 대한 고양감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검증이라고 했죠?”

“그건 분명 저에 대한 거였을 겁니다.”

 

미행에 조심하라거나, 핸드폰은 두고 오라는 지령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쫓는 이를 배제한다는 뜻은 기본. 해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당신 역시 마찬가지라는 의미가 함께한다. 

 

“이 선택이 마지막인 거군요.”

“답을 예견하고 있으면서 선택하라고 말하는 건 이상한 기분이네요.”

“저쪽에서 또 만나, 발터.”

 

그제야 의자가 기운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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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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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릴렌 틴블룸

Parilene Thinbloom

​치즈, 온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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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로드만

Walther R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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