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화성, 폭풍이 지나간 후.
쥰을 깨워준 건 모닝콜이 아닌 내부 유지장치의 경고음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목선의 링과 우주복의 구겨진 부분에 쌓여 있던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화성의 모래에 대해 누가 했던 말이 떠오를 거 같은데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당장은 틀어져 있던 조정밸브를 맞추고 연결소켓을 제자리에 끼우는 게 먼저였다. 몸의 어느 한구석이 아주 박살 난 건 아닌지 의심 가는 둔통이 송곳처럼 찾아 들었다. 그는 호흡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관성적인 행동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하나도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번뇌를 지속하는 대신 이해의 결여를 산소 농도 부족 탓으로 미뤄두고 주변을 살폈다. 술에 취한 사람의 시야를 빌려온 것처럼 가장자리가 검었다. 그러나 기이한 생존 본능이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했다. 본부를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화성의 땅에 발이 닿을 때마다 같은 곳을 확인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처럼 시야 내의 모래를 걷어내고 다시 자리를 확인했다. 매리너 계곡 북쪽의 아키달리아 평원. 익숙한 고지대는 그대로였다. 그는 길을 잃지 않았다. 정상 수치보다 떨어진 산소 농도에도 천천히 깨어난 뇌는 직감에 가까운 불길함에 이유를 찾아냈다. 팀 뉴 마르스. 그들이 이곳에 온 이후로 늘 이정표처럼 자리를 지켰던 우주왕복선이 보이지 않았다. 야속할 정도로 안정을 되찾은 정신은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한발 늦어서 시체로 발견된다면 부디 덜 끔찍한 꼴이길 바란다고. 그 마음은 누군가의 일그러진 얼굴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까닭이었다.
S#2
임시재배소, 낮.
모래만이 가득한 행성. 첨단 기술로 세워졌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음새의 소재 따위가 장기 거주를 위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는 하우스에서 쥰과 세리나가 서 있었다.
“오늘도 여기 있네요.”
“쥰도 또 왔고요.”
“세리나가 하는 실험에 관심이라도 생겼나 봐요.”
“이 실험에 관심을 가지는 건 쥰 뿐인 거 알아요?”
다행히 쥰이 떠올릴 수 있는 변명은 몇 가지가 있었다. 파일럿 역할인 그는 다른 이들처럼 매일 진행해야 할 연구가 없어 한가하다거나 다른 엔지니어의 연구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적당히 둘러댈 수는 있었으나 그는 굳이 더 말하지 않고 세리나의 옆에 와 앉았다. 세리나는 화성의 토양에 식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연구가 이어지는 내내 수십 종류의 씨앗은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흥미를 느끼던 다른 이들의 기대는 금방 꺾였다. 세리나는 개의치 않고 성실하게 계획에 따른 실험을 이어갔다. 진전없는 결과에도 연구일지에는 기록이 쌓여 갔다. 그리고 세리나가 녹음을 남기고 돌아설 즈음이면 언제나 쥰이 있었다. 쥰은 실험에 대해 깊게 물어보지도 않으면서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그가 보는 것이 연구가 아닌 자기 자신임을 세리나도 알았다.
“여기 심은 게 뭐라고 했죠?”
“아, 이건…. 감자예요. 표시가 지워졌네요.”
“가끔 아침 메뉴로 나오는 그거?”
“그것도 심을 순 있겠지만 이건 실험용으로 따로 준비한 거예요.”
화성에서의 생활 반경은 제한되어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두 사람의 시간은 여유가 있었고, 덕분에 세리나는 종종 그의 연구에 관해 설명했다. 쥰은 식물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이 없었으나 아주 아둔하진 않아 곧잘 수업을 따라갔다. 그러다 드물게 세리나에게 질문했다. 그럴 때면 세리나는 질문의 의도가 학구열만은 아님을 짐작했다.
“…그런데 이건 왜요?”
“그냥.”
“나한테 말 걸고 싶어서 물어본 거예요?”
괜스레 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쥰은 부정하지 않았다.
S#3
남겨진 연구소.
쥰은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은 꼴을 한 제 얼굴을 봤다. 화성의 밤. 깜깜한 바깥과 안의 밝은 조명. 유리창 가까이 서 있으면 그림자만으로도 제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낯선 환경에 길게 노출된 피부는 푸석하다 못해 파리했으며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꿰매둔 상처 위에선 피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출혈이 보기만 해도 불길한 빛깔이 되어선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굵은 뼈대 위로 잘 잡혀 있던 근육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영양소 공급의 부족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녁이었다. 화성의 혹독한 밤을 대비하기 전에 그는 감자를 으깨 섭취하기 편하게 만들어 입에 밀어 넣었다. 맛을 평가하진 않았으나 씹는 것마저 지겨웠다. 의무감에 진행할 뿐인 식사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안정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다른 곳에 빼놓게 됐다. 그리고 그럴 때면 쥰은 평소라면 하지도 않는 무의미한 생각을 했다. 오늘의 생각은 이랬다. 지구와는 연락도 되지 않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때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당신한테 똑바로 말할 걸 그랬나. 이제 와서.
말을 건네는 상상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답까지 그려낼 수는 없었다. 장면은 그가 할 수 있는 말만으로 얼기설기 기워졌다. 무의미한 짓이었다. 하지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언제 타인을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무빙워크 위에 걷지도 뛰지도 못하고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고작 그런 무의미한 것이 그의 일상을 영위했다. 그렇게 그는 아흔아홉 번째 형편없는 공상과 만족감이 들지 않는 식사를 마쳤다.
S#4
통신 장비 앞. 모니터.
- 우리가 돌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버텨줘요.
- 돌아가는 길엔 이것보다 나은 밥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최악이거든요.
- 준비할게요. 당신도…. 살아 있어 달란 말에 대답해 줘요.
-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 어기면 가만 안 둘 거예요.
- 있죠, 세리나. 여기서 지내다 보니까 깨달은 게 있는데.
- (응답 없음)
- 죽기 직전의 이런 약속… 사실 못 지키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우리 둘 다 알다시피.
- 무슨 뜻이에요?
- 그런데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지는 이유를 알겠다고요.
- (응답 없음)
- 당신을 보고 싶어요.
S#5
임시재배소, 밤.
“믿어져요?”
“…세리나?”
“와서 봐요.”
정해진 시간에 정해둔 횟수만큼을 채우는 운동을 끝마친 쥰은 씻고 수면실에 들어가는 대신 세리나를 따라가고 있었다. 수면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루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세리나는 근래에 본 것 중에 가장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폐 장치가 느리게 구동하며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 앞서 걸어가는 이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제 뭘 알고 물어본 거예요?”
“그럴 리가요.”
“그래도 어쩐지 당신 영향도 있는 거 같아요.”
설명을 들은 적 있는 이름과 낯선 이름이 섞여 있는 라벨을 하나씩 지나쳐서 어제 서 있던 자리로 향했다. 감자라고 적힌 이름표 뒤의 흙에는 새싹 하나가 돋아 있었다. 이 공간에선 볼 수 없었던 선명한 연녹색이 화성의 흙에서부터 모습을 보였다. 바깥은 어두웠으므로 이곳의 유일한 빛은 칸마다 자리 잡고 있는 식물등이었다. 뒤쪽에 있는 등이 막 솟아난 작은 생명 양옆으로 그들의 그림자를 그렸다.
S#6
화성, 아키달리아 평원.
- 만나러 갈게.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전파가 끊겼다. 결코 저궤도 바깥까지 올라가는 것을 전제로 두고 만들어지지 않은 기체에 쥰은 몸을 실었다. 랑데부를 위해선 최소한 그들이 손이 닿는 곳까진 제어 패널을 확인해야 했고 이는 의식을 유지해야 한단 의미였다. 기체가 버틸 확률과 비등할 정도로 그가 살아남지 못할 확률이 존재했다. 쥰은 생각했다. 분명 돌아가면 누군가는 물어보겠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그러면 제로보단 가능성이 있는 쪽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날 데리러 온 사람을 믿었다고도 덧붙여야지. 그 다짐을 마지막으로 불꽃이 터져 나갔다. 꼭 축포라도 터트리는 모양이었다. 흙먼지가 날리고, 다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