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오른쪽.”
“아니, 조금만 더 왼쪽.”
“거기가 아니라 오른쪽이라니까.”
이렇게요? 평균 성인 남성의 무게를 들고 크레인 기계처럼 움직이는 류우가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무언가 있으니 올라가 보고 싶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언제부턴가 아키라는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샐쭉 웃는 게 들켰다는 표정도 아니었고, 드디어 눈치챘느냐에 가까웠다. 정말 뻔뻔한 사람이다. 류우가는 짧은 몇십 분 만에 ‘사사키 아키라’라는 낯선 이를 한 마디로 정의했다.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잖아요.”
“네가 고개만 숙이고 있길래.”
그를 내려놓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게 더 빨랐다. 사람 품에 안긴 고양이가 튀어 나가는 것처럼 천장에 달린 손잡이에 매달려 반동으로 몸을 앞뒤로 흔들거리며 약 1.5미터 떨어진 거리에 착지했다. 사뿐히 바닥에 내려와 옛날보다 못하다느니. 자기가 학생 때는 3미터까지 뛰어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케케묵은 학창 시절 얘기를 꺼내기엔 안쪽만 탈색한 머리가 보송하기만 했다.
아키라는 한참을 혼자 입을 놀리다가 상대가 멀뚱하게 서있기만 하니까 괜히 맨발이 어색한 듯 몇 번 바닥을 문질렀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의 거리감을 못 잡고 타이밍을 재던 류우가가 뒤늦게 제 신발을 벗어주려는 것처럼 몸을 굽히니까 설레설레 손을 내젓는다.
“내가 신데렐라도 아니고. 나한테 뭐 죄지은 거 있어? 혹시 아까 키스”
“인공 호흡입니다.”
“…오브 라이프 말이야.”
4평 남짓 되는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서 방금까지 죽다 살아난 남자가 보이는 실없는 웃음에 두꺼운 눈썹이 살짝 미간으로 모였다.
“미안미안. 놀리기 좋다는 소리 많이 듣지 않아?”
“처음 들어 봅니다.”
“친구가 별로 없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실이지만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주름이 깊어지며 콧잔등에서 내려온 안경을 밀어 올렸다. 사람을 외형만으로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말투에서도, 행동에서도 날티가 폴폴 풍겼다. 류우가는 속으로 아키라의 평가에 한 줄 더 썼다. 정말 무례한 사람이다.
무슨 상관이냐고. 저도 모르게 뾰족한 말투가 새어 나올 뻔한걸, 성큼 다가오는 걸음걸이가 틀어막았다. 자세히 내려다보니 어디에 부딪쳤는지 새끼발가락 발톱이 부러진 게 눈에 들어왔다. 현대에 맨발로 걸어 다닐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안타깝게도 그의 왼쪽 부츠는 고슴도치 신세가 되었고. 오른쪽 부츠는 가죽통구이가 되었다. 아키라의 발작을 멈춰준 걸 계산하더라도 목숨 하나를 빚진 셈이다. 류우가는 완전히 무릎을 접어 복사뼈가 불거진 발목을 붙잡았다. 갓 잡힌 물고기처럼 버둥거리던 아키라의 왼발은 긴 공방 끝에 결국 부츠 안에 구겨 들어갔다. 한쪽을 해치운 다음에 남은 오른발은 다소 얌전했다.
“죄송합니다.”
됐어. 너나 신어. 유난이야. 수그린 그의 어깨를 지지대 삼아 파닥거리던 아키라는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얼이 빠졌다. 아? 뭐라고? 되물을 틈도 없이 후속타가 이어졌다.
“저 때문에 괜히… 아까도 위험했잖아요.”
“앞으로도 제가 같이 있으면 위험해질 거예요.”
“옛날부터 운이 안 좋아서 주변 사람을 말려들게 만드는 편이라.”
“잠깐.”
아키라는 손바닥으로 다급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이대로 두고 있다간 지하 10미터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 탈출하기 전에 생매장 당할까 단숨에 속이 답답해졌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있으면 함정에 발이 달려서 쫓아와? 반대로 널 여기 두고 가면 내보내 준대?”
“그건 아니지만….”
더 이어지려는 말은 물리적으로 막혔다. 아키라는 위아래 입술을 집게처럼 손가락으로 눌러서 속터짐을 원천봉쇄했다. 오리처럼 입도 벙긋 못 하는 처지가 된 류우가는 눈만 동그랗게 떴다.
“난 막힌 곳이나 좁은 공간에 갇히면 미칠 것 같긴 한데… 다른 사람이 있으면 심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난 네가 있으면 괜찮아.”
도통 내려갈 일 없이 뻣뻣하던 고개가 푹 떨어졌다.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져 마지막에는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는 류우가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길게 늘어진 앞머리가 이마 위로 흘러내리고 등 뒤로 쏟아지는 LED의 붉은 조명이 남자의 피부를 물들였다. 입술을 누르던 손가락은 떨어졌는데 어쩐지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정말 서투른 사람이다. 류우가는 평가를 고쳐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