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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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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55분

모험 · 드라마 · SF

10191년, 행성 모스코의 체르노미르딘 가문은 황제로부터 사막 행성 '아라키스'의 통치권을 선물받는다. 아라키스는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였지만... 체르노미르딘 가문은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우주의 많은 귀족들이 스파이스를 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의 선물을 거절할 수 없었던 체르노미르딘 가문은 결국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로 향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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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동안 성이 어수선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황제가 체르노미르딘 가문에게 아라키스의 지배권을 하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테다. 간단히 생각하면 아라키스의 지배권은 마냥 달콤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상급 각성제인 스파이스가 재배되는 유일한 행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라키스는 위험했다. 많은 세력가들이 스파이스를 노리고 체르노미르딘을 공격해올 것이 뻔했다. 하지만 황제의 '선물'을 체르노미르딘이 감히 거절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럴 힘도 명분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는 수 없이 체르노미르딘 가는 아라키스로 향해야만 했다. 그 선발대를 꾸리고, 출정을 준비하느라 근래의 체르노미르딘 성이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이러한 어수선함을 외면하고 싶었던 글로나스가 향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채워져 바깥 풍경이 훤하게 보이는 그곳은 오직 체르노미르딘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과, 그들이 허락한 측근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

   글로나스는 홀츠만 실드를 착용하다 말고 멍하게 창밖을 내다봤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아름다운 모스코의 모습이 보였다. 햇빛이 차가운 공기를 선명하게 투과하고, 흰 눈은 크리스탈처럼 반짝이는 눈부신 풍경. 짙은 초록빛 침엽수 숲 사이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고요히 빛났다. 그 물이 어찌나 맑은지 얼은 상태에서도 호수 바닥이 다 보일 정도였다.

   그 섬세한 풍경을 보면서도 글로나스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고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마음을 달래는 행위에 가까웠다.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연무장 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글로나스.”

   곧바로 호명이 이어졌다. 트루스였다.

   “트루스.”

   트루스라고 불린 남자는 물고 있던 머리끈을 손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붉은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으며 연무장의 중심으로 다가왔다. 헐렁한 차림새에 어쩐지 건들거리기까지 한 걸음걸이는 그가 체르노미르딘 가에서 신뢰받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치 자신의 방처럼 성 내부를 드나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글로나스는 방어막을 해제하며 트루스에게 달려갔다. 빠르게 다가간 후 퍽 친밀한 투로 그의 옆에 붙어 섰다. 다가오는 글로나스를 바라보며 트루스가 말했다.

   “가주님이 글로나스는 뭐 하고 있냐고 묻더군.”

   “아버지가요.”

   “그래.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본다고 전하면 걱정하실걸.”

   “그건... 그렇죠.”

   글로나스가 곤란해하자 트루스가 나이프를 하나 건넸다. 짙은 색으로 코팅된, 중간 사이즈의 훈련용 나이프였다. 글로나스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칼을 받아들었다. 다소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뭡니까…”

   “걱정 끼치긴 싫고, 거짓으로 보고할 순 없으니까? 오랜만에 대련할까.”

   트루스는 쾌활하게 웃으며 제안했다.

   “……예.”

   글로나스는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에 응했다. 그래도 대련이라고, 힘없이 늘어져 있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글로나스는 금방 자세를 고쳐잡았다. 방어막을 다시 가동시킨 후 그는 연무장 필드 중앙으로 가 트루스를 기다렸다.

   “오십쇼.” 준비를 마친 글로나스가 말했다.

   “그래~ 그래. 기다려봐.”

   트루스는 느긋하게 홀츠만 장비를 착용한 후 아무 나이프나 주워들었다. 그는 공중으로 한 번 나이프를 돌리듯 던졌다가 받아내며 손목을 풀었다. 자칫 잘못하면 칼날에 피부가 베일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긴장하지 않다. 노련한 티가 났다. 

   트루스가 보호막 가동 버튼을 누르고 글로나스의 앞에 섰다. 두 남자는 허공에서 가볍게 서로의 칼날을 맞부딪혔다. 쨍, 하고 금속이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퍼졌다.  대련이 시작됐다.

먼저 기세를 잡고 파고드는 건 글로나스였다.

   “트루스는 더운 행성에서 왔었죠.”

   그는 유연하게 손목을 움직이며 쉴 틈 없이 공격을 가했다. 노련한 전사이자 글로나스의 검술 스승인 트루스는 그의 공격을 전부 받아쳐냈지만, 글로나스는 공격이 막히고 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반 걸음씩 스텝을 밟아 나아가며 그를 차근차근 몰아붙였다.

   “그래.”

   “아라키스만큼 더운 행성이었습니까.”

   “아라키스는 나도 처음 가는 거니 확답은 할 수 없지? 게다가 내 고향은 바닷가 근처라. 아라키스처럼 건조하진 않았군. 그렇지만 단순 '뜨거움'으로만 비교하자면. 응. 아라키스보다 더 더웠을걸.”

   트루스도 글로나스의 의도를 알았는지 어느 지점에서부턴 멈추고 버틴 채 물러나지 않았다. 글로나스가 예리하게 헛점을 파고드는 족족 그는 맨손으로 공격을 쳐냈다. 그 상태로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기까지 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공격을 시도하던 글로나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 자연스럽게 공격이 중단되었다.

   “그렇습니까.”

   트루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성장한 제자를 바라보며 그는 뿌듯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방어막 결투를 할 때의 원칙. 내가 말해준 적 있었지.”

   글로나스는 조금 불만스럽지만 성실하게 대답했다.

   “방어는 재빠르게. 공격은 천천히, 상대의 헛점을 유도하도록.”

   “잘 배웠군.”

   “이거 정식 수업입니까. 아버지께 보고하기 위해 명분을 만드는 거 아니었냐고요.”

   “기왕 대련하는 거 진지하게 임하면 좋잖아?”

   “그건... 그렇지만…” 글로나스의 태도는 평소보다 묘하게 불손했다. 트루스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체르노미르딘 성 사람들 중에서도 손꼽히게 감이 좋은 타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는 글로나스를 눈감아주기로 했다. 불손한 이유 역시 짐작갔으니까.

   끊긴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건 트루스 쪽이었다. 그는 칼끝을 글로나스에게 겨누듯 손잡이를 쥐고, 상대를 조준하듯 응시하다가 단숨에 팔을 뻗었다. 칼날이 정확하게 옆구리 쪽으로 향했다. 글로나스도 당해주고만 있진 않았다. 트루스가 움직임과 동시에 자신의 팔로 칼을 쳐냈다. 전신 실드가 진동하는 소리를 내며 푸른빛으로 빛났다. 반응 속도나 스피드로 따지자면 글로나스 쪽이 한 수 위였다. 그건 타고난 재능이어서 트루스는 늘 그 잠재력을 염두에 둔 채 글로나스를 가르치곤 했다.

   금속과 금속이, 팔과 팔이 몇 번이고 맞부딪히며 충격음을 만들어냈다. 공격에 익숙해진 글로나스는 그대로 공격 태세를 유지하며 버텼다. 애매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옆으로 주춤주춤 걸으며 서로의 빈틈을 노렸다.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트루스였다.

   “걱정하는 만큼 나쁘지 않을 거야.” 퍽 쌩뚱맞은 발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글로나스는 단숨에 맥락을 잡아냈다. 알면서 굳이 되묻는 건 일종의 반항이었다.

   “... 뭐가요.”

   “아라키스 얘기지.”

   그간 몇 번의 합이 오갔다. 글로나스는 침묵으로 답했다. 그러자 트루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 그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더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 냉방 슈트가 있는데 뭘."

   “…….”

   "아니면. 정치적 견제 따위를 신경쓰는 건가?"

   “…….”

   “우리 도련님이 참 영특하긴 하군. 벌써부터 우주 정세를 읽으려 하고.”

   “그런 게……. 아닙니다.”

   글로나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 나머지 음성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갑작스러운 외침에도 트루스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래?” 오히려 익숙하게 되물을 뿐이었다.

   “……됐습니다.”

   “하나도 안 됐단 얼굴인데?”

   “집중해요.”

   글로나스는 트루스를 제압하듯 온 몸으로 부딪혀왔다. 트루스는 간발의 차이로 그 공격을 빠져나오느라 중심이 흔들렸다. 주도권을 잡은 글로나스는 틈을 놓치지 않고 나이프를 휘둘렀다. 맹공이 쉴틈없이 이어졌다. 아하하. 하하... 트루스는 마치 즐거운 듯 웃었다. 점차 일그러지는 글로나스의 얼굴과는 대조적이었다. 처음 글로나스가 느낀 감정은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내 불만에 서러움 혹은 억울함 따위가 뒤섞이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방어막을 후벼파는 공격은 점점 과감해졌다. 그게 트루스의 눈에는 전부 다 보였다. 글로나스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점점 격렬해짐을. 트루스도 그걸 인지함을. 그러나 그는 애써 무시했다. 어차피 트루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행동 전부를 지켜봐왔던 사람이다.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하고, 또 잘 알 것이라 괘씸할 뿐이었다...

   근거리에서 나이프가 칼에, 팔에 몇 번이고 맞부딪혔다. 트루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열받았나본데……. 달래줘야 하나.'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게 글로나스의 눈에 다 보였다. 그대로 글로나스는 단숨에 트루스에게 접근했다. 그는 곧장 상대의 팔을 잡아 뒤로 꺾어 제압하고, 나이프를 남자의 목 근처로 가져갔다. 트루스의 방어막이 경고하듯 붉은 빛으로 빛났다.

   대련의 승패가 결정났다고 생각한 순간, 트루스가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제가 걱정하는 건……."

   "알아. 날 걱정하는 거지?"

   "……." 글로나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가주님이 날 아라키스 선발대로 선정하셨지. 그게 걱정되는 거잖아."

   글로나스는 트루스의 방어막을 끄고 승리를 선언하는 것도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불평 어린 시선이었다. 트루스는 외면하긴 커녕, 오히려 웃음기를 띄며 그 원망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괜찮대도. 알잖아. 난 더위에도 강하고, 적응력도 좋고, 내 몸 지킬 만큼은 칼을 휘두를 줄도 알지.”

   “걱정이…….”

   글로나스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잠시 대화에 집중한 틈을 타, 트루스가 그의 다리를 걸고, 그대로 딩겨 넘어트린 후, 바로 올라타 목에 칼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비열한 기습이었다. 글로나스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트루스를 바라보았다. 

   “하하.”

   트루스는 보란듯 글로나스의 손등을 터치했다. 글로나스의 실드가 맥없이 꺼졌다. 공명하던 한 쌍의 진동음 중 하나가 죽어버리자, 사위가 확연히 고요해졌다. 

   트루스는 나이프를 거두며 말했다.

   “게다가 위기상황에 강하기까지.”

   “…….”

   “내가 이겼군.”

   글로나스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긴 머리카락이 연무장 바닥에 나뭇가지처럼 퍼졌다. 시야에는 오직 얄밉게 웃는 트루스 뿐이었다. 그는 곧 글로나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주겠단 의미였고, 글로나스도 모르지 않았다. 글로나스가 냉큼 그의 손을 잡지 않은 건 정말로... 트루스가 미워서였다.

   ‘왜 다 안다는 것처럼 웃는 겁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나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기에, 글로나스는 트루스의 손을 잡았다. 울퉁불퉁한 살결이 겹쳐지면 따뜻하게 자신을 일으키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글로나스는 내심 그 당김이 좋았다. 당장은 이렇게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아주니까. 그러나 글로나스가 몸을 완전히 일으키면 손은 금방 떨어졌다. 예의를 다 차린 트루스는 몸을 물렸다. 손끝에 남은 온기는 금방 휘발되어 사라졌다. 그게 꼭 눈 앞의 상대같다고 글로나스는 생각했다.

   ‘그냥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고요.’

   트루스가 강하고, 노련하다는건 안다고요. 그래도 보내고 싶지 않다고요. 보고 싶으니까. 곁에 두고 싶으니까. 그런 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차마 소리내어 전할 수도 없었다. 글로나스의 마음은 별만큼 무거웠고 상대는 그 마음을 감당하기엔 눈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니까. 트루스가 글로나스를 조금 짐작하는 만큼 글로나스도 트루스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트루스는 자신이 걱정한다는 걸 알면서, 그 사실을 고작 대련 이기는 데에나 써먹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글로나스는 남들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이고자 했다. 헛된 희망이 사람을 망친다. 글로나스는 그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어쩌면 트루스는 이것까지도 가르치고 싶었던 걸까. 그의 웃는 얼굴을 노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문득 글로나스는 궁금해졌다. 아라키스로 떠난 트루스는 나를 그리워할까.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기다릴까. 

   그리고 곧 그 고민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다. “트루스. 기대를 버리는 일은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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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트루스 로

Truth Lowe

글로나스 A. 체르노미르딘

Glonass A. Chernomyrdin

검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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